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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서랍엔 무엇이 있나요- 본문

안녕, 갱지

당신의 서랍엔 무엇이 있나요-

이요상 2020. 3. 28. 22:53

시제는 총 15만,원이다. -28만원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금보다 카드를 쓰는 사람들이 열배나 많고, 동전 통에는 살구빛 립밤이 함께 들어있다. 향이 없는 핸드크림도 하나, 반쯤 남은 치약, 먹다남은 초콜릿 봉투, 거울 보는 용도로 쓰는 팩트, 버려야 할지 보관해야할지 불분명한 개인적인 우편물 두개, 천원에 100개쯤 들어있는 고무즐 머리끈 한통, 다이소에서 산 분홍색 안마기.

병원은 낯설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특별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들의 서랍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업무에 필요한 물건들도 한가득이다. 편지 봉투와 30센티자, 작은 인주와 병원 직인, 클립과 커터칼 심, 찾아가지 않은 건강검진 결과지, 꼭 찾으러 오겠다고 전화로 부탁했던 서류 서른장 쯤.

알콜 스왑, 지혈밴드, 일회용마스크 상자, 체온계, 문진표, 환자에게 동선을 체크해줄 병원 2층의 지도 한뭉치.

 

사람들이 생각하는 병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흰색 복도와 초조한 사람들? 알콜냄새와 울음소리? 띵동하는 호출음과 안좋은 소식에 돌아서는 사람들. 물론 그것들이 없는 날은 없다.

소리지르는 사람들과 토사물, 바닥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달려서 잘린 손가락을 들고 오는 사람들은 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익숙함도 그곳에 있다. 출근과 점심시간, 티타임과 숨을 돌리는 짧은 타임,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인사, 직장이라는 곳이 주는 불편감과 타부서와의 마찰, 기타 등등.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티백차가 나오면 나눠 마시고, 별것 아닌 연예인들의 열애 소식에 놀라 공유하는 일도 꾸준히 한다. 그뿐인가. 우리의 관심사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점심 메뉴다. 월요일이면 직원 식당 앞에서서 메뉴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사내 메신저에는 오늘의 점심메뉴가 돌고 돌아 공유된다.

[기장밥

된장국

닭고기간장조림

도라지오이무침

깻잎지

포기김치]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환자는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지만, 누군가의 외상이, 누군가의 낙상이 아침 저녁으로 일어나지만, 우리 역시도 놀라고 안타까워하고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일들에 익숙해져 간다.

좋은 거냐고? 물론 나도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안일해지지 않기를 보통의 직장인 처럼 바랄 뿐이다.

 

이제 너무 오래 같은 일에 익숙해져,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습관적으로 답하는 일이 없기를,

환자와 보호자가 궁금해하는 물음표에, 이사람들은 왜 이런 걸 궁금해 하지? 하는 물음을 갖지 않기를,

무례한 사람들과 상사의 지인이란 이유로 독불장군 처럼 병원에서 저지레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오늘은 이 글을 쓰면서, 월요일, 내 서랍을 정리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출근을 하면 오늘 해야할 일들의 리스트를 정리해봐야지 하고 생각한다.

 

다만 병원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밥벌이의 익숙함에서 느슨한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나의 서랍에는 무엇이 자리하게 될까. 5년 뒤에는, 그리고 10년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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