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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1_ 진홍빛 소녀 본문

공연정보/연극무대 _ 후기

20160501_ 진홍빛 소녀

이요상 2016. 5. 3. 23:55

 

 

나는 그 무대에 정말 두사람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둠이 내린 무대, 조명이 비춘다.'  로 첫 줄을 쓰곤 합니다. 하지만 진홍빛 소녀의 첫줄은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망설였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씁니다.

 

'어둠으로 잠식한 세상, 간신히 그들이 서있는 곳을 서로가 바라본다. '

 

 

 

저는 사실 2인극을 즐겨 보지도, 자주 찾지도 않거니와 이렇다할 좋은 기억도 없는 관객 중 한사람입니다. 1인극인 모놀로그만 하더라도 중간에 잠들어 함께 간 사람의 얼굴을 붉히게 만든 경험도 있습니다. 2인극은 상황보다도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며 기억과 과거, 추적과 감정선을 따라 극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몇초만 딴생각을 하거나 다른 소품에 신경을 쓴 사이 대사를 놓치고,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거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간 몇번 진홍빛 소녀를 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계속 망설이다 이번에 바뀐 포스터를 보고 걸음했습니다. 소녀의 고개를 숙인듯한 옆모습과, 모서리에 서서 자신의 구역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그림자. 그 모습이 소녀에 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이라 걸음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이 무대를 만들 분들께 죄송스러운 인사가 되겠지요.

 

봄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대입니다. 초겨울 같기도 하고, 끝가을 같기도 하고,

어쨌든 끝에 관한 이야기이자 돌아봄에 관한 이야깁니다. -봄은 봄인가요-

 

 

 

아내가 집을 비운 어느날, 문득 찾아온 어린 시절의 그녀.

보육원에서 함께자라온 소녀, 은진의 등장으로 대학교수로 재직중인 이혁은 패닉 상태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은진이 가져온 커다란 캐리어에서는 어린 여자아이의 울먹임 소리가 계속들려오고.

때마침 이혁의 어린 딸을, 어린이집에서 고모가 데려갔다는 전화를 받게됩니다.

 

부모형제 없는 주인공에게, 누이인 고모가 있을리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캐리어를 볼모로, 은진은 이혁에게 거래를 제안합니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내가 오빠한테 원하는 게 뭘까. 제한시간은 오늘 새벽 4시. 오빠가 맞추지 못하거나 거짓말을 한다면...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될꺼야."

 

한손에는 휘발류가 들어있는 통을, 반대쪽 손에는 라이타를 든 그녀는, 한밤 중 진실게임을 시작합니다.

어린 딸을 살려야 하는 남자는 절박하고, 칼자루를 쥔 여자는 절실하죠.

 

 

 

 

처음엔 미친 여자가 두려울 뿐이지만,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여행가방속의 아기. 검은 봉투 속의 소녀. 어둠속의 손길, 지울 수 없는 진홍빛 그림자들. 나는 그 무대에 정말 두사람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옳지 않고 누구도 틀리지 않은 그 상황속에,

 

막이내리고 퇴장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원했던 것이 무엇일까 하고 여자의 마음으로 상상해 보았지만, 알 수도 안다고 이해할 수도 없는 마음이겠지요.

어둠으로 잠식한 세상, 서로가 서있는 곳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빛이 내렸던 그 시간.

 

절규와 비이성으로 가득한 무대였지만, 저는 내내 그녀의 미소가 기억에 남습니다.

 

보고싶어서, 보고 싶어서 왔다던 그녀의 미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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