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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보/연극무대 _ 후기

2015.12.12 하퍼리건

이요상 2015. 12. 20. 18:06

 

 

무대가 참 좋았어요. 제가 선돌극장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곳은 어쩐지... 객석에 앉아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사실 그냥 객석이고, 별다를 것 없는 대학로 무대인데, 선돌극장에 가면 연극 속에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배경 같았던 소품들은 장면마다 의자도 되고 다리도 되고, 공간을 분리했다고 생각했던 조명들은 사실 별로 상관 없고, 그랬던 것 같아요.

 

공간을 만든 건 배우였어요.

그녀가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기가 다리고, 그녀가 술을 마시고 있으니 이곳이 술집이고, 우리가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곳이 무대인 것처럼요.

 

 

 

사실 첫날 공연을 보고, 바로 리뷰를 올릴 생각이었어요.

먼저 본 산수유 극단 작품, 허물이 너무 좋기도 했고.

이번 무대는 보고나서 만족감이 크기도 했고요.

 

 

그런데

 

다음날 생각하니 그것이 회색이었던 것도 같고,

그 다음날 생각하니 가을 색이었던 것도 같고.

 

어떤 이야기였다. 라고 써야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건 지금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날 내가 보았던 이야기가 어떤 색이었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요.

 

 

 

 

하퍼, 리건.

 

평범한 직장인인 그녀는 아버지가 아프단 소식에 휴가를 내고 시골로 내려가려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못해요.

빌어먹을 사장님은 휴가를 내어주지 않거든요.

사장님은 하퍼의 미소가 좋다느니 하퍼의 딸이 졸업후 갈데가 없으면 연락하라느니,

친절과 가식이 섞인 말들을 늘어놓으며 결국 휴가를  '내어주지 않죠.'

 

집에는 자신의 밥벌이에 의지하는 딸과, 남편까지 있어요. 무턱대고 결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혹 짤리기라도 하면, 당장 내일 아침은 어떻게 하겠어요. 곧 다가올 딸아이의 대학입시는 또 어떻구요.

 

하지만 리건은

'결근'을 선택해요.

남편과 딸에게 말하지 않은 채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아버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시골로 내려가죠.

'잠수'를 타기로 한거에요.

 

하지만

 

도착한 그 도시에

 

아버지는 없었어요. 그녀가 도착하기 몇시간 전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죠.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 까요. 빌어먹을 사장놈.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이사하게 만든 젠장할 남편.

 

모든 게 싫었겠죠.

모든 걸 버리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분명 그러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퍼는 그 때부터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일들을 행동으로 옮겨요.

 

낯선 남자의 물건을 훔치고, 그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가격하고.

낯선 남자와 잠자리를 하고,

 

또. 수년간 대화하지 않았던 어머니와 마주 앉죠.

딸아이가 입었을때 젊다고 생각했던 (훔친)라이더 자켓을 걸치고,

엄마와 마주 앉아요. 그리고 마침내

 

자신과 자신의 남편을 믿어주지 않았던 어머니,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죠.

 

 

 

 

 

 

그녀의 일탈은, 중년 여성이 택했다고 보기인 과격해 보이기도 하지만,

모르겠어요.

나라고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 일 수 있었을까요.

 

 

궁지에 몰린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아요.

참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은 틀렸는지도 몰라요.

 

참아선 안되는 순간과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 뒤섞여 있는 거겠죠.

우린 버티고 있고, 그건 극속의 인물들도 마찬가지겠죠.

언젠가 나도 그녀처럼, 진실을 말하게 되는 날이올까요.

좋은 것을 좋다고,

싫은 것을 싫다고,

 

너를 원한 순간이 있었다고,

너를 기억하겠다고.

너에게 미안했다고...

 

 

 

오늘의 우리는 한계 어디쯤. 그 뒤섞인 혼돈 어디쯤에서 버티고 있는 걸까요.

 

어떤 이야기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어요. 다만 덕분에, 아직도 가을이 끝나지 않은 것만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어요.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낡고 빛바래. 누군가 진실을 고백해도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계절이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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