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mind

연극_여기가 집이다 [자문자답리뷰] 본문

공연정보/연극무대 _ 후기

연극_여기가 집이다 [자문자답리뷰]

이요상 2015. 12. 3. 23:34



 [2014.05.17 리뷰 남기다]

 

 

 

 

오오오월 삼일 일곱시 공연 보고왔습니다.

 

-----------------------------------------------------------------------

 

아니, 이걸 왜 이제야 올리시는 겁니까, 열흘도 더 지난 시점에서

 

아, 그게요, 말하자면 좀 깁니다.

 

짧게 말해주세요

 

길게 말하면 안됩니까.

 

안될거야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이래서 그랬다. 라는 답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네. 그러니까... 저는, 짜증이 났습니다.

 

짜증이라구요?

 

네.

 

연극을 보고 짜증이 나다니, 몹쓸공연이었나요?

 

아니요.

 

그러시면.. 티켓값이 아까우셨나요?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럼 .... 왜 짜증이 난겁니까?

 

길게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좋으실 대로...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말하면 좋을까요. 네. 애초에, 의도가 불순했다는게 맞을겁니다. 최근의 저는 갈피를 잃고, 남들이 어떻게 썼나 남들은 어떻게 쓰나, 라는 궁금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본인의 글이 잘 써지지 않으셨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게 문제 였던 겁니다. 제 글은 쓰지 못하고, 남의 글을 훔쳐보고 싶었습니다.

제 글이 써지지 않으니, 남은 어떻게 썼나, 궁금한 마음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았습니다. 한참을 뒤적거려도 죄다 오래전의 글들 뿐이더군요.

저는, 최근의 글들을 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의 글을 보고 싶으셨다면, 교보문고에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인터넷이나 종이 활자로 구할 수 있는 희곡들은 대부분 오래전에 공연되어지거나, 더 오래오래전에 무대에 올랐던 녀석들입니다.

뭐, 그런 이유로 제 딴에는 트랜드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당시에는요, 그러니까 지지난주에는 말이죠.

 

아, 예.

 

뭐, 트렌드라기보다는, 제가 좀 그래요. 만나는 사람도 한정적이고, 겪는 일도 거기서 거기니까, 쓰는 족족 이게 이시대를 반영하고 있는걸까 싶은 의심이 마구 들었습니다. 좋게 말해 의심이지, 글쟁이로서 확신이 없었다는게 진심입니다.

이러니, 요즘 글을 쓰는 분들은 어떤 작품들을 어떻게 쓰는가, 대체 어떤 작품이 무대와 스치고 이어져 무대에 오르고 있을까,

혼자 그런 빈정거림과 의구심의 날개를 펼치다가 대학로로 걸음했더랬습니다.

 

결론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접하고 싶었고, 텍스트 대신에, 텍스트를 그대로 무대화 한 공연을 택했단 말씀이시군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공연이 짜증으로 이어지셨습니까?

 

배우들이 엄청 많더군요.

 

네?

 

고시원에서 옹기종기.

 

네, 배경이 고시원인가요?

 

네, 게다가 샤막처리를 해서 고시원의 각 방이 모두 보이게 구성한 것이, 묘하고도 은밀한 것이, 배우가 등장하기도 전부터 사람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샤막 처리라 함은?

 

아, 샤막이란 재질의 천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비싸서 샤막을 실제로 쓰진 않았을 거고,

제 생각엔, 그것과 비슷한 재질의 천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예를들면 모기장이나 망사같은 걸로 벽을 만든듯 싶었습니다.

내부가 보두 보이게, 그러면서도 경계선은 분명히 설치한거죠. 

 

예에...

 

배우들이 많습니다.

처음엔 고시생 하나, 알콜중독자 하나, 백수건달 하나, 은퇴한 노인네 하나, 이렇게 넷이더니만,

물 건너온 집주인

그 와이프와 애인, 전처 등등의 여인들과

기타 등등으로 버글버글 해지며 고시원이 마치 가정집처럼,

아니아니, 명절날 우리 외갓집처럼 변하더란 말입니다.

 

어지러운 무대였나요?

 

아니요 아니요. 그렇진 않습니다.

어지럽다고 느낄 틈이없었습니다.

정신없고 자시고도 없고, 이 작품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을 앞세워 이야기를 힘차게 이끌어 갑니다.

 

욕망이라고 하면, 돈에 관한건가요?

 

아뇨. 사람의 기본적 욕망이 돈이었던가요?

 

아니었던가요?

 

뭐, 그러신 분들도 있겠지만 제가 느낄 땐 안주_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안주.. 라면, 골뱅이 소면,?

 

아니요, 안착해서 거기에 살고, 거기에 위안을 받고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아아, 네 안주요, 알지요 안주.

 

 안착하고 싶어하는, 안정을 느끼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욕망이 저변에 깔려서,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등장인물들이 들어가고,

시끌 벅적한 풍경이 정겹고 뭐 그랬습니다.

 

그래서요?

 

네?

 

왜 여기가 집이다를 보고 짜증이 나셨습니까?

 

아, 그렇죠. 그랬습니다.

 

결말이 병맛이었군요.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결말은 달콤하지도, 개운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대로 쓰고 시큼한 것이 익숙한 맛이었습니다.

삼키기가 어려웠지만 충분히 익었고, 씹기에도 부담이 없었습니다.

 

짜증이 날 만한 결말은 아니었단 말씀이십니까.

 

평소였다면 그랬겠지요.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 돌아가는길에 몇번이고 곱씹을 무대였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돌아가는 길에 몇번이나 절망을 느꼈습니다.

저의 밑바닥을 실감했습니다.

저는, 이런 시선따위는 가져본 일이 없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냉소와 불평불만, 체념 같은것이 저 밑바닥 부터 차곡차곡 쌓여있고.


그위에 조각조각 감사나 안도, 안위와 기도 같은 걸로 겨우겨우 메꿔나간 가치관들이 앙상하게 만들어져 있는 나약한 인간인 것입니다.


여기가 집이다는.

정교한 무대도, 완벽한 무대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작가의 존재가 빛나는 잘쓰여진 희곡이었습니다.

장면 장면이 잘 다듬어졌고, 갈래갈래가 탐스러웠고,

순간순간은 고민되어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아무래도 이렇게는 쓸 수 없다는 확신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텍스트가 폭발하고, 배우들은 거리낌이 없이 작품을 믿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이렇게는 쓸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 작품앞에서 깨닫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짜증이 났습니다.

 

그럼... 질문을 좀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짜증이 났던 공연의 리뷰를 이렇게 올리시는건 또 무슨 이윤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장난하십니까.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잘은, 정확히는, 저도 저를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요?


그날의 제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얼마나 쭈그리 인지,

그 무대가 얼마나 온전히 따스했는지, 그런 무대를 나도 그리고 싶다는 욕망

안주를 넘어선 도약, 만족을 넘어선 자기 증오,

그랬던 봄날의 그 무대를 여기에 적어놓고 싶었습니다.

제가 다시 이만하면 되었지 하고 아무렇게나 휘적거리며 퇴근길에 닭강정을 빨고 있을때,

잊지 않고, 잊지 말고, 다시 엉덩이를 붙일 수 있길,

다시 강해지길, 저는 오늘밤도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짧은 질문에도 답변해주신 블로그 주인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럼 오늘 자문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왜요?


뭘요?


왜 이렇게 뜬금없이 끝납니까.

 

아직, 더 하실 이야기가 남으셨나요?

 

벌써 질문이 떨어지셨나요?


아뇨,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단지 저는,


어디 그래 남은 질문 좀 던져보세요.



글쓰러는 언제 가실 예정입니까?



예에, 가야지요.



언제요?


이 자문 자답을 마치고요.

 

그러면.. 서둘러야 겠군요. 어서어서 글 쓰러 가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게 제일 중요하지요

그럼, 이만 자문자답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s